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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리뷰

장승배기 이야기: 정조의 발자취가 깃든, 서울 속 특별한 지명의 비밀

by zitwo 2025. 1. 12.

서울 지하철 7호선 장승배기역, 그 이름에 숨겨진 흥미로운 이야기를 파헤칩니다! 😲 정조의 능행길, 호랑이 퇴치 전설, 그리고 왕명으로 세워진 유일한 장승 '대방장승'까지! 🎉 장승배기 지명의 유래와 역사, 4년 만에 돌아온 장승제 소식, 그리고 장승을 둘러싼 논란까지 🔍

 

 

🎯 요약

 

🌳 장승배기 지명의 유래

  • 조선 시대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융건릉)로 향하던 능행길에 호랑이가 자주 나타난다는 소식을 들음.
  • 맹수를 쫓기 위해 두 개의 장승을 세우라는 명을 내려 '장승배기'라는 지명이 생김.
  • 마을 사람들은 장승 앞에서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동제(洞祭)를 지냄.

🎉 장승배기 장승제

  • 1991년 장승배기역 6번 출구 근처에 두 개의 장승(대방장승) 재건.
  • 매년 10월 24일 장승제 개최 (2015년 서울미래유산 지정).
  • 코로나 팬데믹으로 중단되었다가 2023년에 4년 만에 재개.
  • 노량진2동 주민자치회 주관.

👑 대방장승의 특별함

  • 왕명으로 세워진 유일한 장승.
  • 전국 장승의 우두머리로 여겨짐.

🗺️ 장승배기 지명의 흔적

  • 서울 강서구 염창동: 과거 '장승배기' 지명 존재.
  • 서초구 염곡동: '장승꽂이' 지명.
  • 송파구 삼전동: '장승골' 지명.
  • 흑석동, 동소문 밖에도 장승 존재 기록 (일제강점기 연구).
  • '장승배기'는 장승이 있던 고갯길을 가리키는 보통명사였으나, 노량진 장승의 특별함으로 인해 고유명사화.

📜 정조의 명령, 진실은?

  • 정조가 직접 장승을 세우라고 명했다는 기록은 없음.
  • 영조 때 제작된 '해동지도'에 '과천계장생현로' 표기 (정조 이전 장승 존재 암시).
  • 정조의 명령은 기존 장승을 새로 만들어 세우라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적절.
  • '일성록' 1786년 기록: 정조 능행길(지지대 고개~현륭원)에 5리마다 11개 장승 존재.
  • 판소리 '변강쇠가': 노량진 대방장승이 변강쇠 만행에 분노, 전국 장승 소집 (사근내, 지지대 장승 등).

🤔 장승의 소실과 재건

  • 1930년대 도로 개설로 장승 소실 추정.
  • 1940년 황해도 이주민 증언: 원래 위치에서 약간 벗어난 곳에 장승 존재.
  • 해방과 6.25 전쟁 이후 장승 목격자 사라짐.
  • 무허가 주택, 고갯길, '장승배기' 지명만 남음.
  • 1980년 동작구 분구, 1987년 장승배기 표석 설치.
  • 1991년 노량진2동 주민 주도로 장승 재건.

🔥 장승 수난과 보존

  • 1991년 말 기독교 단체 철거 시위, 방화.
  • 1994년 1월 기독교 교인 추정 인물에 의한 지하여장군 밑둥이 훼손.
  • 두 달 후 훼손 부분 복원.
  • 1991년 장승 재건과 함께 장승제 부활.

 

 

 

 


 

🌳 장승배기 지명의 유래, 호랑이와 두 개의 장승

  • 정조는 이곳에 호랑이가 자주 나타난다는 소식을 듣고, 맹수를 쫓기 위해 두 개의 장승을 세우라는 명을 내렸다고 전해집니다. 🐅
  • 그 후, 이 일대는 장승배기라는 정겨운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죠. 마을 사람들은 장승 앞에서 동제(洞祭)를 지내며 마을의 안녕을 기원했다고 해요. 🙏

 

 

🎉 장승배기 장승제, 4년 만의 귀환

  • 1991년, 장승배기역 6번 출구 근처에 두 개의 장승이 다시 세워졌고, 매년 10월 24일에는 장승제가 열리고 있습니다. 🎉
  •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잠시 멈췄던 장승제는 지난해, 4년 만에 재개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었답니다! 😊
  • 장승제는 2015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노량진2동 주민자치회에서 주관하고 있어요.

 

👑 왕명으로 세워진 유일한 장승, 대방장승

  • 장승배기의 장승은 왕명으로 세워진 유일한 장승이라는 특별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방장승이라고도 불리며, 전국 장승의 우두머리로 여겨진다고 하니 정말 대단하죠? 👍

 

 

🗺️ 장승배기, 서울 곳곳에 숨겨진 흔적

  • 그런데, 장승배기라는 지명이 서울 동작구 노량진에만 있는 것은 아니랍니다! 😮
  • 서울 강서구 염창동에도 장승배기라는 지명이 있었고, 서초구 염곡동에는 장승꽂이, 송파구 삼전동에는 장승골이라는 지명이 존재했었다고 해요. 🗺️

 

  • 과거 장승은 마을이나 사찰 입구에서 도로표지(路標) 역할을 했기 때문에, 20세기 전반까지 서울 곳곳에서 장승을 볼 수 있었어요.
  • 일제강점기 연구에 따르면 흑석동, 동소문 밖에도 장승이 있었다고 합니다. '장승배기'라는 명칭은 장승이 서 있던 고갯길을 가리키는 보통명사였지만, 노량진 장승이 갖는 특별한 의미 덕분에 오늘날까지 지명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죠. (권혁희, 2014)

 

📜 정조의 명령, 그 진실은?

  • 하지만 정조가 직접 장승을 세우라고 명했다는 기록은 남아있지 않아요. 🧐
  • 영조 때 제작된 고지도인 해동지도(海東地圖)에는 노량진 장승배기길이 '과천계장생현로(果川界長牲峴路)'라고 표기되어 있는데, 이는 정조 이전에 이미 장승이 존재했음을 의미합니다.
  • 따라서 정조가 장승을 만들라고 했다는 이야기는, 기존의 장승을 새로 만들어 세웠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 같아요.

 

  • 조선 후기 임금의 언행을 기록한 일성록(日省錄) 1786년(정조 10) 기록을 보면, 능행길이었던 수원 지지대(遲遲臺) 고개에서 현륭원까지 5리마다 11개의 장승이 있었다고 해요.
  • 판소리 '변강쇠가'에도 노량진 대방장승이 등장하는데, 사설에 따르면 노량진 대방장승이 변강쇠의 만행에 분노하여 전국의 장승을 모아 의논을 했고, 여기에 사근내 장승과 지지대 장승 등 정조의 능행길에 있던 장승들이 모였다고 합니다. 흥미로운 이야기죠? 😉

 

 

🤔 장승배기의 장승은 언제 사라졌을까?

  • 그렇다면 장승배기의 장승은 언제 사라진 걸까요? 😢 일제시기인 1930년대에 이 일대에 도로가 개설되면서 사라진 것으로 추측됩니다.
  • 1940년에 황해도에서 노량진으로 이주한 분의 증언에 따르면, 장승이 원래 있던 곳에서 약간 벗어난 곳에 서 있었다고 하니, 1930년대에 원래 위치에서 조금 이동했을 가능성이 있어요.

 

  • 하지만 해방과 6.25 전쟁을 거치면서 장승을 보았다는 사람이 없어졌어요. 😥
  • 경기도 시흥군이었던 이 일대는 서울이 팽창하면서 무허가 주택들이 들어섰고, 고갯길에는 장승배기라는 지명만 남게 되었죠.
  • 이후 서울로 편입된 후 관악구였다가 1980년 분구 이후 동작구 관할이 되었고, 1987년에 장승배기라는 표석이 설치되었습니다.

 

 

🔥 수난을 겪은 장승, 그리고 부활

  • 장승은 1991년 노량진 2동 바르게살기위원회와 주민대표에 의해 재건되었지만, 곧이어 수난을 겪게 됩니다. 😢
  • 그해 말에 기독교 단체들이 철거 시위를 벌였고, 지하여장군 밑둥이에 불을 붙여 태운 그을림이 생겼어요.
  • 1994년 1월에는 단체명을 밝히지 않은 기독교 교인에 의해 지하여장군 밑둥이가 전기톱에 잘려나가는 안타까운 일도 있었죠. 😭
  • 잘려나간 부분은 두 달 후에 복원되었고, 장승제는 1991년 장승 재건과 함께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 맺음말

  • 장승배기, 그 이름에는 정조 임금의 효심과 관련된 흥미로운 전설, 마을의 안녕을 기원했던 조상들의 소박한 바람, 그리고 급격한 도시화 속에서도 전통을 지키고자 했던 사람들의 노력이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단순한 지하철역 이름을 넘어, 우리에게 역사와 전통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특별한 공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오늘날 장승배기역을 이용하는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장승제에 참여하는 지역 주민들은 알게 모르게 이러한 역사의 흐름 속에 함께하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장승배기의 장승이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지만, 과거 수난을 겪었던 역사를 되짚어보며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계승하는 일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 앞으로도 장승배기의 이야기가 널리 알려지고, 장승제가 지역의 대표적인 전통문화 행사로 더욱 발전하여, 장승배기가 지닌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오래도록 빛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이 글을 통해 장승배기의 매력에 흠뻑 빠져보는 시간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장승배기역에 방문하여 그 역사적인 현장을 직접 느껴보시길 추천합니다.